서 론
대입생들에게는 합격 통지서, 취업 합격, 자녀들의 결혼, 손자 손녀 소식 등 정말 기쁜 소식이 많지만 그러한 소식 뒤에는 또 다른 목마름과 또 다른 기다림으로 연결된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면, 내 영혼이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인해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그 사실을 알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제 3일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마다 죄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전도가 구원이 필요한 자에게 복음을 직접 전하는 행위에 국한된다고 한다면,
선교는 전도에 섬김과 나눔 그리고 봉사와 같은 사회참여를 더한 것으로 정의된다.
즉, 선교는 전도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선교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땅에 오신 것부터 시작되며,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도(使徒)들의 파견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므로 선교의 의미 안에는 파견이라는 뜻과 함께 복음의 전파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선교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선명하게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한 민족을 부르실 때, 절박한 위기와 고난 가운데서 부르신다. 사회적, 심리적으로 고난과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스스로를 나타내시고, 약하고 미련한 자를 택하여 강하고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신다. 그래서 믿음과 복음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육이 번성하고 문명이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 역사를 좀 더 알게되면 통찰력과 역사의 문제를 푸는 '공의와 사랑'의 원리를 알게된다.
역사 속에서 인구 이동, 민족이동, 유배, 핍박, 가난, 도시문제 등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을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참된 진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선교 운동을 통하여, 새로운 문물과 지적 이동이 전해지고, 그래서 선교의 현장은 개화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의 창조와 회복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가 인간의 역사에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보았다.

본론
1. 역사를 보는 다양한 관점
역사는 사건들의 이어진 연속 과정을 정리하여 기술한 것이다. 역사가에 따라 특정사건을 선택하고 다른 사건은 생략할 수 있지만,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사건의 중요성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실화이지만 때로는 필자의 의도 또는 당시 정치 지도자의 의도 그리고 사회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각각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
이집트의 수도 맴피스에서 발간된 기원전 1300년 6월 6일자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 것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기자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어제 홍해 바다가 갑자기 범람하여 수많은 바로의 군대가 물에 빠져 숨졌다. 바로 람세스 2세는 도망치는 불법 외국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국경을 넘어와 고센 지방에 정착했으며 벽돌 만드는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황실 대변인은 홍해 바다의 갑작스런 범람은 얼마 전 나일강 계곡에서 일어난 자연재해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이 기자였다면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 속에 하나님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적고 그 과정을 매우 진지하게 기술해 놓는다.
2. 구속사를 위한 선교가 역사를 만들어 감
우리는 자연적이든 초자연적이든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특별한 방법으로 개입하신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사실로 믿는다. 그 이유는 성경이 거룩하고 진실한 하나님이 그의 영감으로 기자에 의해 그 사건을 매우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성령께서 사건에 대한 조명을 통하여 사건의 의미와 중요성을 정확히 알 수 있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의 중심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가장 우선 순위가 정확하게 매겨진 가운데서 역사가 일어나고 그 역사의 첨단에는 선교와 전도의 사명감을 가진 제자들의 삶이 진행된다.
세속적인 역사가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바울의 감옥행 등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구속적 목적을 성취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역사 속에서 구속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사와 구속적 목적을 이해하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 속에서 영감 있는 해석을 하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졌기 때문이다.
3. 선교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는 독립적임
교회는 어느 곳에서 성장하고 있는가? 성장하는 교회는 유럽이나 북미에 있지 않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 있다. 1900년 케냐 기독교인 숫자는 수 천 명에 불과하였지만 지금은 66%인 8천만에서 1억의 그리스도인이 있다. 중국도 현재 1억 명의 그리스도인 인구가 있다. 지구상의 어느 교회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하나님의 교회다.
사건을 기록하는 역사가에게도 편견은 있다. 역사가가 가진 편견은 사건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1979년에 이란혁명이 일어났다. 수도 테헤란에서 미국인들이 인질로 잡혔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만약 소련 정부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기술한다면 소련 정부입장에서 쓸 것이다. 그러나 이란 학생이라면 그 사건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 정부는 또 다를 것이다. 16세기의 종교개혁운동에 대해서 세속적인 휴머니스트들은 종교개혁운동을 사회과학적 용어로 기술 할 것이다. 제 2바티칸에서는 반란으로 볼 것이다. 개신교는 종교개혁운동으로 볼 것이다.
무슬림이라면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각자의 신념이 있다. 기독교 역사가들의 신념은 성경이 진리라는 것과 교회는 선교적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전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성경말씀과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는 신학적 교리가 진리라는 확신이 있다.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 일하고 계신다. 사람들을 역사 속에서 부르시고, 역사 속에서 그분을 섬기게 하신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그는 하늘에 승천하셨고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부르신다.
교회는 선교적 본질을 가지고 있다. 교회는 선교해야 한다. 인간과 교회의 유일한 사명은 선교이다. 존 맥케이 교수는 “선교하지 않은 교회는 진짜 교회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인식해야 한다.
교회사는 커다란 단위로서의 기독교회가 교리적, 조직적으로 발전, 성장, 쇠퇴하는 것을 기술하는 것이다. 기독교회의 핵심부의 발전과 성장을 중심으로 기술하게 되므로 초기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출발하지만 이후로는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교회들의 역사를 기술하게 되고 18-19세기 이후에는 미국교회들의 역사를 기술하게 된다.
선교역사는 교리적, 조직적 발전보다는 지리적 팽창을 중심으로 역사를 평가 서술하게 된다. 교리적 발전을 이룬 사건보다는 지리적 팽창을 가져오게 된 사건과 인물, 새로운 지역으로 교회가 전파되어지는 방법과 교회가 그 지역에 뿌리는 내리게 되는 전략 등에 주로 관심이 있다.
4. 주요 선교의 역사
역사를 400년씩 5번으로 나누어 세계 선교역사를 구분하는 데 역사의 전체를 기억하고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나눈 것이다.
1) 제 1기 초대교회와 로마 선교 시대(AD 0-400년)
복음은 사회 계층 전반에 골고루 침투했을 뿐 아니라 여러 무역로를 통해서 확산되어 나갔다. 역사상 기독교의 가장 눈부신 승리는 약 200년 만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정복한 일일 것이다. 이 시대의 초기 단계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묘사되어 있다.
바울을 통해서 유대인이나 헬라인,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 종이나 자유자, 남자와 여자, 그 누구라도 살아계신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으며, 속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히 확인되었다.
2) 제 2기 중세 초기 선교(AD 400-800년)
로마제국을 침공한 야만족들은 이후 로마인들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복음화 되었다. 이 시기 후반부에 최초의 수도회들이 설립되었다. 대부분 수도원 전통은 수도원과 그 주변을 중심으로 믿음을 유지하고 확장되었다.
3) 제 3기 중세 후기선교(AD 800-1200년)
복음은 스칸디나비아를 비롯한 기타 북유럽 지역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교황 그레고리 7세(Gregory VII)에 의한 교회 개혁은 클루니(Cluny) 수도회, 시토(Cistercian) 수도회, 그리고 여러 연합 영성 운동들로 강화되었다. 다음 시대에서처럼 왜곡된 형태의 선교가 이루어졌다.
4) 제 4기 : 무슬림 선교?(AD 1200-1600년)과 로마 가톨릭 선교(1492~ 1793년)
일단 바이킹족이 ‘복음의 반격’에 항복해 기독교를 받아들이자마자 그들은 역사상 가장 왜곡된 형태의 선교인 ‘십자군 전쟁’에 앞장서게 된다. 십자군 운동은 복음 진보를 가로막았다. 이 시대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꽃피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수도원 형태의 선교구조가 확대되면서 사방 가톨릭교회는 해외 식민지 확장과 더불어 발전했다. 새로 탄생한 개신교회는 생존을 위해 신학적 교리를 재형성하는 일에 열중했는데 사실상 타민족에게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선교구조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5) 제 5기: 땅 끝까지 선교(AD 1600-2000년)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계속 확장되다가 1800년 경 나폴레옹이 유럽을 약탈하고 무신론, 이신론, 인본주의 등이 점차 인기를 얻으면서 주춤하게 된다. 이와 달리 개신교에서는 자발적으로 가는 유형의 선교운동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지구상 모든 지역으로 복음을 들고 나아갔다. 개신교 선교운동은 먼저 식민지 확장과 더불어 혹은 식민지 확장과 상관없이 해안 지대에서 시작되었다. 다음으로 내륙 지방에 두 번째 선교운동 물결이 밀려들었으며, 이들은 마침내 땅의 모든 종족에게 복음 전파하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

결론
인간의 문명은 먼저 깨어있는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그 개인들이 그 사회와 민족을 깨워 그들의 세계관이 바뀌면 그 사회가 복음으로 인해 바뀐다.
왜냐하면 복음은 인간의 문명에 제대로 된 방향성, 즉 어둠을 밝히고, 거짓과 잘못된 문제를 알게 하면
사회가 상호 신뢰와 협조의 통합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곧 정신이 먼저 바뀌고 행동으로 옮겨지면 사회는 발전한다.
그래서 인간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인간들이 가장 정직해지고 남을 도울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되게 하고, 참된 지혜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지혜가 바로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쉽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님들이 저개발 지역 및 나라와 민족들에게 문명의 발전을 위한 단초를 제공했다.
그리고 근대 국가의 기초인 법과 원칙에 의한 민주주의의 정신적인 틀을 제공해주었다.
특히 구한말에 대한민국에게 복음을 전한 많은 선교사님들은,
당시 미국과 서방 사회내에서, 매우 뛰어난 엘리트들 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조선의 지도자들과
매우 긴밀한 협조로 조선말기의 전근대적이고 폐쇄적인 정치, 사회 지도자들을 깨우는 계몽 운동에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가장 빨리 성장하는 데에, 미국의 교회와 미국과 서구의 선진 교육이
매우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러한 복음의 역군들이 일구어낸 많은 선한 일들을 통해 경제와 사회,
국가 전반적으로 큰 부흥을 일으켰고,
대한민국의 교회에서는 전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보낸 선교국가가 되었다.
하나님은 선교를 통해 개인과 민족을 깨우고,
또한 선교를 통해 성경 말씀에 담겨진 지혜와 부귀를 주시어
그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나라의 정신을 깨우고 밝혀서 그들을 부강하게 해주시는 것이다.